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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Lab SR 7th/Talk for Youth

너는 청춘이다.그래서 괜찮다. -마이크임팩트 <청춘페스티벌 2011> 후기-



 필자는 '마이크임팩트', '청춘페스티벌' 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학생 기자단을 하던 중 '청춘페스티벌' 정보를 알게 되어서 취재 겸 참석하게 되었다. 기자단을 하기 전까지 강연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만큼 
직접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전조사를 뒤로 하고 오는 길을 보기 위한 공지사항 하나 읽고 5월 28일 여의도 한강 플로팅 스테이지로 향했다.


   처음에는 생각한 것 보다 사람이 없어서 놀랐다. '페스티벌'이라고 해서 대학 축제같은 규모 있는 행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페스티벌'이 끝난 뒤에는 마음 속은 '뜨거운 것'으로 꽉 찼다.
 


 

청춘페스티벌 사전 행사 - 청춘 만끽 플레이


먼저 오후 2시 사전 행사로 '청춘 만끽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음악.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따라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쿠스틱 '토크' 밴드라 불리는 '테이크 아웃'이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테이크 아웃은 그냥 노래만 하지 않는다. 공연 중간 중간의 만담이있다. 관객들과 소통하고 웃음을 선사해서 '어쿠스틱 토크 밴드'라고 부른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 만큼이나 감미로운 목소리와 톡톡 튀는 젬베소리가 '청춘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을 다른 사람의 물건과 교환을 하는 'Bigger and Better'. 자신의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더 필요한 물건으로 바뀌는 것이다.

 
 김밥 두 줄을 싸오신 분께서 축제 도중 배고픈 분이 있으실까봐 한 줄을 '볼펜' 한 자루와 교환하고 갔다. 배고팠던 사람에게는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과연 '김밥'은 다른 무엇으로 교환되었을까? 


 이 곳은 '청춘까페'. 익명의 청춘에게 전하는 엽서를 주고 커피를 받아가는 곳이다. 커피와 함께 이전 사람이 적어 놓은 엽서를 받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필자가 받은 엽서


 정말 우연히도 20대 중반인 나에게 정확하게 전달된 엽서. 커피와 함께 받으면서 웃음(^_^)이 나왔다. 과연 '어느분이 보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사전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였다. 원판에 ☆표가 되어있는 곳에 과녁을 맞추면 사은품을 주는 행사이었다. 단순히 사은품만 주는 행사가 아니라 이 원판에 담긴 의미가 있었다.
 원에서 각각의 부채꼴 모양안에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차지하는 크기는 전부 다르다. 부채꼴의 크기는 바로 그 나라에서 굶고있는 5세미만 영유아 수를 나타낸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다트'게임으로 알고 많이 참여했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지구촌 어린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오후 4시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청춘페스티벌' 행사가 시작되었다.

청춘페스티벌  - 1부 청춘 위로 메세지 '너는 청춘이다. 그래서 괜찮다.'


'마이크임팩트'를 통해 조금의 희망,열정,위로를 얻었으면 한다. 그리고 세상에 널리 전해져서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강연과 다르게 힘들었고 실패를 했던 분들을 모셨다.  '청춘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라'라는 외침과 함께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이 되었다. 

나는 나밖에 없다. 60억분의 1이다  - 배우 정보석

 
 작년까지 방영된 '거침없이 하이킥'을 즐겨보았다. 극중에서 힙합에 빠져있는 '보사마'(배우 정보석)로 등장한 편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극중 힙합전도사가 오늘은 청춘들을 위한 희망전도사로 이 자리에 와주었다.
  

 
 

 한 달전 강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 줄지 답이 안 나왔다. '자이언트'에서 '조필연' 역을 맡았을 때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IQ 70의 영구'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스케줄이 강해서 3일째 밤을 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과 같다고 할 수 있는 이 하나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서있는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서 나는 목표 만한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표, 꿈이 있으면 움직일 에너지가 생긴다. 목표를 가졌을 때 흔들리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목표가 생기면 주변에 떠들어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책임이 되어서 더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강조하는 것이 하나있다. 바로 ‘서비스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대학 시절에 페스트푸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 당시 시급은 400원이었다. 한 달 지나면 50원이 올라 450 원, 500원 .... 최대 700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일한지 한 달만에 700원을 받았다. 
 내 생각은 단순했다. 시급 400원이니까 '내가 일하는 시간 동안은 쉬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님 없으면 청소하고 설거지 하고 치킨,페티 초벌구이 더해 놓고 다음 사람까지 생각을 했다. 700원을 원한것이 아니라 이 시간동안은 일하는 시간이니까 열심히 일하다보니까 그 결과를 700원으로 보상받았다. 이처럼 
단순하고 무식하니까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20대까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배우를 시작한지 26년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진짜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 마치 인생이 끝난것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기한탄을 하고 화를 낸다. 그러면 그 친구들에게 "회사가 인생이 전부냐? 현재 과학으로 보면 우리는 50년 더 넘게 살 수 있는데 왜 마치 인생 끝난것처럼 살고 있냐? 너는 너자나!" 이 말을 한다.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사람들을 보면 좋은 것만 보게되고 따라가려고 하면 끝이 없다. 너무 힘들고 버거우면서 힘들다.나는 나밖에 없다. 60억분의 1이다. 
 요즘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쳐주는데 이런 말을 한다. "
누구꺼 따라하려고 하지 말아라.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너를 살아라. 네가 너를 표현할때 최고의 배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살면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그렇다면 행복할 것 같다. 

 다보면 남들과 비교를 하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배우 정보석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춘들 모두 '
자존감'을 가졌으면 한다. (자존감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 자존감을 갖고 있을 때 각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힘들다 -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MBC의 무한도전을 통해 서경덕씨를 본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단하신 분이어서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강연을 통해서 서경덕씨 스스로 세계를 향한 '무한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어렸을때 부터 가진것은 아니었다. 대학원생 시절 1년 휴학을 하고 무작정 뉴욕행을 택했다. 부모님께는 전날 이야기를 했다.(^_^;;) 
 해외 여행을 갔을 때에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인다. 프랑스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영국에 가면 브리티쉬 뮤지엄을 가는 것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도 국립 중앙 박물관을 간다. 90년대 외국 박물관에는 한국어 서비스(음성 서비스 배치)가 없었다. 
 미국 최대의 박물관인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그 곳 역시 한국어 서비스가 안 되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데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파워가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무작정 박물관에 전화를 걸었다.
 박물관▷ 넌 누구냐?
 서경덕▶ 한국에서 넘어온 학생이다. 한국인들도 여기를 많이 이용하는데 한국어 서비스가 없다.
 박물관▷ 어떻게 진행하고 싶냐?
 서경덕▶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렇게 대화가 오간 뒤 담당자 전화를 바꿔준다고 했는데 해당 업무와는 관련없는 다른 부서로 연결을 해주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오기로 또 전화를 했다. 그 결과 담당자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되었다.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음성서비스 단말기 공장 사장이 받았다. 다시 또 전화를 했다.
 드디어 음성서비스를 담당하는 디렉터의 비서와 연락이 되었다.
 서경덕▶한국어 서비스가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해 디렉터와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
 비서   ▷ 담당자 분이 바쁘신 관계로 2개월 이상 기다리셔야 됩니다.
 서경덕▶ 
당연히 담당 디렉터가 바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그 당시 1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디렉터와의 미팅을 위해 비서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당일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이게 잘하는 일인지 두려웠다. 박물관 로비를 지나 오피스로 갔더니 여려명이 환영을 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단지 디렉터와 만나서 한국어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하려고 방문한 것인데 회의실로 안내해주었다. 회의실 안에서는 6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6으로 한국어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 큰 오해가 있었다. 
박물관 측에서는 학생 신분인 것은 알았다. 가족여행왔다가 박물관에 들렸는데 2달 뒤 재벌이신 아버지께서 '한국어 서비스를 박물관에 만들고 와라' 이렇게 받아 드린 것이다. 한국어 서비스를 하기위해 돈가방을 갖고 온 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디렉터의 비서가 통화 내용을 잘못 전달한 것이었다.  아닌 것을 안 순간 서로 먼 산을 쳐다보았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10분 뒤에 조심스럽게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서경덕▶ 제가 한국에 가서 한국어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받아 오겠습니다. 한국어 서비스에 필요한 계약서 한 장을 작성부탁드립다.
 박물관▷ 다른 나라는 정부기관에서 찾아와서 했다. 일개 국민인 그것도 학생이 찾아와서 해달라고 온 적은 처음이다. 생각해보고 1주일 뒤에 전화를 주겠다.

 엘레베이터에서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상황은 안봐도 비디오였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주일 뒤 기적처럼 전화가 왔다. 
계약서를 쓰러 오라고 했다. '세계적인 기관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휼륭한 선택이다. 계약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자 다른 이유는 없고 당신이 순수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웃음)
 전화 통화를 마치고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 가면 바로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정부기관, 기업 등 200여 군데를 돌아다녔는데도 다들 생각해 보겠다는 말뿐이었다. 계약기간은 다가오고 점점 똥줄이 타들어 갔다. 계약기간이 얼마 안남았을 때 한 기관에서 후원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14시간의 시차를 생각해서 저녁 11시(미국 시간으로 오전 9시)가 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박물관측에서 "우리는 당신이 해낼 줄 알았다." 하면서 난리가 났다. 아마 '설마 학생이 후원을 받아 오겠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다 그렇게 추진력이 좋습니까?" 라는 물음에 "한국사람은 다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1년 6개월 만에 한국어 서비스가 되었다.(박수)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뒤 뉴욕 현대 미술관에 가게되었다. 그런데이 곳 역시 한국어 서비스가 없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대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다.
 미술관▷ 넌 누구냐?
 서경덕▶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들여 놓은 사람이다.
 이전의 계약 성사로 하나의 타이틀이 생긴 것이다. 안내데스크에서 바로 담당 디렉터와 연결을 해주었다. 디렉터가
 "서경덕씨 시간이 언제 괜찮으세요?" 라고 물어보았다. 갑과 을이 바뀐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바로 내일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없어 보일 것 같아서 '3일 뒤가 좋을 것 같아요'고 했다. 그리고 3일 뒤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디렉터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인사하자 마자 선빵을 날렸다. "선계약 후지불"이 한국 스타일이다. 계약서를 먼저 써주었다. 그 계약서를 갖고 바로 다음날 다시 한국으로 왔다. 후원을 알아보는데 이전과 다르게 10군데 정도 돌아다녔는데 연락이 왔다. 그리고 뉴욕 현대 미술관에도 한국어 서비스를 들여 놓았다.
 말하려는 것은 처음이 힘들다는 것이다. 처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요즘청춘들의 문제는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습성을 익혔으면 한다. 그 다음 부터는 일사천리이다. 세상에 힘든일은 많다. 하지만, 청춘들의 꿈을 위해 조금 참고 멀리 봐라봤으면 한다.


 "노래를 잘 못부르는데 여러분이 많이 아시는 노래이니까 같이 불러주세요" 
 
 이 날 특별히 청춘들을 위해 그룹 <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불러주었다. 서경덕씨가 들려준 노래의 '그 조그만 꿈을 잊어버리고 산 건 내가 너무 커 버렸을 때' 가사말처럼 청춘들모두 많은 꿈들을 갖고 있을텐데 모두 꿈을 잊어버리지 말고 그 꿈을 이루었으면 한다.
 

청춘은 저지르는 것이다 - MBC '신입사원' 독설 멘토 방현주 아나운서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중 아나운서를 공개채용하는 '신입사원'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신입사원'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송곳같은 독설로 검색어순위에도 오른 방현주 아나운서. TV에서 '독설가' 이미지 때문에 '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뜨거운' 방현주 아나운서를 느낄 수 있었다.

 



'신입사원'에 출연한 이후 인터넷에서 '독설 방현주', '눈동자를 보면 맹금류의 눈을 보는 듯 하다'는 글을 보았다. 온 국민들이 볼 수 있는 공중파 프로그램에 도전한 5천 5백분들이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진실된 마음으로 조언을 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면접, 미팅 등 사람들 만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랬을 때 '팁'을 주려고 한다.

  무대가 너무 멀리 있다고 하면서 직접 관객석 앞으로 와서 이야기를 해준 방현주 아나운서

- 심사위원은 3가지를 본다. 에너지 눈빛 소통 -
 

 첫번째 그 사람만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 
이미 60억명이 있는데 왜 또 만들었을까? 사람은 각각 다른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자신만의 에너지를 찾은 사람이 심사위원에게는 보인다. 에너지를 어떻게 찾을까? 심장이 말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아라. 그 사람을 떠올리면 심장이 막 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있을 때 힘들것 같아도 '그냥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여러분은 그냥 하고 싶은 마음을 따라서 몸을 움직여 보았나?
 
두번째는 '눈빛'이다. 제가 봤을 때 눈빛은 얼굴에서 나타난다. 얼굴이라는 것은 얼빠졌어 할 때 쓰는 '얼'(영혼)의 꼴(모양) 이라고 생각한다. '얼'이라는 것은 눈빛에 나온다고 한다. 지금 열심히 강연을 듣는 여러분의 눈빛처럼

 세번째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즉 말과 소통(커뮤니케이션).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읽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종합정리하면 '
얼마큼 저지르고 사냐?' 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입사원'에서 "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세요." 라는 말을 자주한다. 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 없나요?" 라고 물어본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저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따라서 움직였다.

( 저지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한다. 

 유치원에 들어가서 1주일 만에 등교거부를 한다. 120cm 신장의 정말 좋아하는 '이수일'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병원놀이시 의사, 간호사 역할을 하는데 '이수일'의 짝꿍을 안 시켜주었다. 병원놀이에서 수일이와 짝꿍이 안되면 유치원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농안에 들어가서 등교거부를 했다. 유치원 원장선생님이 직접 집에 오셨고 결국 수일이와 병원놀이를 했다. 인생 짧은데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아야죠 ^^  그 다음으로 초등학교 시적 꿈이 피겨스케이트 선수였다. 겨울 방학이 되면 논에 물을 대 놓고 꽝꽝 얼면 스케이트장으로 이용했다. 스케이트를 너무 좋아해서 방학내내 새벽에 출근을 해서 관리아저씨와 관리를 하고 저녁에 마무리로 얼음을 밀고 어묵을 먹으면서 퇴근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달리는 것이 좋았다. 새벽 6시 에 등교했다. 100M 끝을 바라보면서 뛰는 심장 터질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운동회의 꽃인 이어달리기에서 마지막 선수 환호성을 받으면서 역전하는 그 것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여러분들도 가슴터질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살면서 계속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 고등 학교때에는 8년간 짝사랑을 한다. 표현을 안해봤다. 초5때 부터 고3때까지 별을 바라보면서 대화도 하고 기록으로 남긴 5권이 있었다. 
)
 

 대학교 여름 방학때 펜팔을 했던 중국 친구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중국에 갔다. 94년 대학생 시절에 이메일 서비스가 없었다. 그래서 펜팔을 많이 했다. 펜팔 희망 국가는 1위 프랑스, 2위 캐나다 이런 순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부터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 친구와 펜팔을 주고 받았다. 
 달랑 
주소 하나 갖고 33시간 배를 타고 그 친구를 찾아 간다.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친구를 찾으려고 단어장에 중국어를 정리해서 갔다. 중국에 도착해서 아침부터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해질녁쯤에 겨우 집을 찾아서 갔는데 친구는 이사를 가고 없었다. 중국까지 왔는데 반드시 만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소문 끝에 친구가 나온 고등학교까지 찾아갔다.  그 학교 선생님이 자전거를 태워주셔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국어로 길묻는 표현은 안 잃어 버리고 있다.  외국어 하나에는 미쳤으면 한다괜히 혼자 계속 반복하면서 듣는다. 남들이 웃을 만큼 해야 된다.  또 다른 나의 큰 마당이 생기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때에 '리우 시앙'(아테네 올림픽 육상 남자 110m 허들 금메달 리스트)이라는 선수를 전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극적인 일을 피하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아무 곳에서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우 시앙'을 계속해서 따라 다녔다. 회사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카메라맨을 불러왔다. 그리고 호텔 앞에서 7시간 기다렸다. 이런 행동에 중국 감독이 "너 같은애 처음 봤다." 면서 단독으로 '리우 시앙' 인터뷰를 성사했다. 

 내가 말하는 '저지르는 것'은 무턱대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일단 씨앗을 뿌려야 키울 수 있다. 벌레 먹을까봐 걱정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 없다. 쓸모없는 일을 많이해라. 이것이 근육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다. 실패에 두려워 하지 말아라.  실패를 빨리하면 그 만큼 시간을 번 것이다. '자빠졌구나 넘어졌구나.' 를 직접 느끼면서 다음에는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면 엄청난 파워가 저장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한다.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 영혼이 없이 죽어 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런게 멋있어요. 그런 격려를 해주고 싶다. 일종의 바람 넣기. 산만하게 살아 왔는데 항상 꿈이 있었다. 
 먼 꿈은 
북한 여성을 위한 리더쉽 학교를 만들고 싶다. 전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북에 있는 여성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교육을 못 받아서 생계를 위해 몸을 팔고 있다.  북한 여성들에게 교육을 하고 북한에 리더쉽 학교를 짓고 자유와 평화가 없는 곳에 가장 평화로운 리조트를 만들고 싶다.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꿈은 크게 꾸라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원자바오 사진을 보여주는 방현주 아나운서 

 최근 꿈꾸는 것은 중국 '원자바오' 국무총리를 만나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간에 더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원자바오'를 만나서 중국에 대한 미래를 듣고 싶다. 매일 핸드폰에 있는 '원자바오'를 보면서 질문 하나씩을 하고 있다. 한중 수교 20주년때에 인터뷰를 하고 싶다. 20주년 때에 못하면 25주년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이크임팩트'에서 노래를 부탁했다. 중국 친구들을 만나면 부르는 노래인데 ‘달은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거에요’ 라는 가사가 있다. 달을 보고 있는 마음처럼 '꿈꾸시고 저지르시고 움직이시라는 의미'에서 불러드린다.

  
청춘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준 방현주 아나운서




결국엔 잘 되려고 힘든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 개그맨 김경진


 다른 강연에서는 볼 수 없는 연사가 오늘 자리를 빛내주었다. 바로 개그맨 김경진. 여성팬들의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김경진" 구호에 맞추어서 자신있게 등장했다. 이전 강연과 색다른 강연이 특유의 웃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절대 포기 하지 말아라.' 라는 주제를 준비했다.  식상하시다고 느낄 것이다.  재밌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지만 제목은 교과서 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개그맨 되고 난 후 부터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2007년도 
개그맨 시험 딱 한번 1주일 준비로 당당히 수석 합격으로 들어왔다. '지킬&하이드'로 반응이 좋았던 초반에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개그맨 시험 때 했던 '지킬&하이드'를 보여준 개그맨 김경진
처음 본 개그였지만 한번 시험으로 수석 합격 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__^) 

 하지만 어깨에 들어간 힘은 한 달도 안 되어 빠져버렸다. '개그야' 앞 시간에 주몽을 해서 시청률이 괜찮았다. 하지만 주몽이 끝나면서 개그야 시청률이 반토막이 되었다. '개그야'가 힘들어 지고 코너검사를 맡았다. PD들이 '김경진한테 속았다, 낚였다.' 라는 말을 했다. 다른 개그프로를 모방해서 검사를 맡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잘 안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대 울렁증'이었다. 녹화날 아침에는 밥을 못 먹었다. '박달촌'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단순히 삽질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긴장이 너무 되어서 삽질하다가 손을 떨었다. 결국 삽으로 동료에게 똥침을 했다. 그 때 '대사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얼굴로 웃기는 개그맨이 되었다.
 새로운 코너를 만들었다. 다른 개그맨이 스케치북에 낙서를 했다. 눈, 코, 입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대충 그린뒤 눈주변에 검은색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런 다음 '
이렇게 생긴사람이 어디있어?' 라는 말을 하면 내가 나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웃길 줄 알았는데 많은 관객들은 웃기는 커녕 기겁을 했다. 그 때 크게 좌절을 했다. 혼자서 '나는 자질도 없고 울렁증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MBC에 관두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 길로 대전집으로 내려가려고 영등포역으로 갔다. 대전가는 무궁화 열차표가 8천원이었다. 표를 사려고 카드결제를 하는데 카드잔액이 3천원이었다. 결국 집에 못가고 다시 MBC 코미디언 실로 들어갔다. 욕은 물론 심지어재떨이로 때리려고 한 선배들도 있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선배들이 모두 퇴근한 새벽4시에 퇴근을 했다. 택시 탈 돈이 없으니까 기다렸다가 5시반 첫 차를 타고 집에간 뒤 다시 아침 7시까지 출근을 했다. 이런 생활을 2주동안 했다. MBC가 여의도에서 일산으로 옮기게 되면서 다행히도 그 벌은 없어졌다. 
 
 일산 MBC 건너편에 고시원을 잡았다. 그리고 개그를 짰다. TV를 보면서 다른 개그맨의 장단점을 적은 포스트잇을 고시원 가득히 붙였다. 방은 좁았지만 꿈은 컸다. 그러나 고시원 생활 두 달만에 너무 우울했고 눈물이 났다. 고시원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마의자가 있었다. 천원을 넣고 의자에 앉았는데 진동에  맞추어 눈물이 나왔다. 이 때 모습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았는데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우울증이 나아졌다. 

 그 뒤 '갈갈이' 박준형 형님이 MBC 로 넘어 왔다. 지나가다가 복도에서 마주쳤다. 보자마자 형님曰 "MBC에 너같은 인재가 있었어?" 그렇게 다시 코너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도 '무한도전 돌+I 콘테스트' 에서 했던 '손 안대고 트레이닝복 입기' 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러다 다시 한동안 침체기를 왔다. 그 뒤 '원숭이의 빵을 뺏어먹는 UCC'로 인기를 얻었다. UCC를 찍을 당시 조련사 선생님께 물어보니까 그 원숭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했다. 웃겨야된다는 사명감 하나로 빵을 뺏어 먹었다. 그 이후 유트부에 '코리아 크레이지 가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서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과정이 있고 난 뒤 2009년 MBC 방송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해드리고 싶은 한 가지 조언은 '
결국엔 잘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돈이없거나 고통,고민이 있고 힘든 과정 모두 결국엔 잘 되기 위한 과정이다. 바로 앞에 놓여있는 컵 속의 물을 먹지 말아라. 대신 지금 힘들 수 도 있고 보이지도 않는 우물을 파라. 우물을 파기위해 열심히 삽질하고 곡괭이질해라.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깨알같은 웃음을 주는 개그맨 김경진. 하지만 집으로 갈 기차표값이 있었다면? 우리 앞에 개그맨 김경진은 없었을 것이다. 기차표가 없어서 다시 MBC로 온 뒤 선배들에게 구박도 많이 받고 혼자 있으면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엔 잘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잘 견디어냈다. 우리 청춘들도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잘 되기 위한 과정 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다양한 분들의 청춘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좋은 위치에 있는 분들도 처음부터 잘 되었던 것은 아니다. 또는 출발은 좋았으나 크게 넘어진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철학으로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청춘페스티벌' 이 끝난 뒤 많은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다.
 자리에 일어서니까 해가 저물고 있었다. 단지 오늘의 해가 저문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우리모두 내일의 해를 향해 달려나갔으면 한다.